시국이 어수선하다. 백성들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데 백성의 녹을 받는 정치는 귀를 막았다. 역사는 계승의 힘을 얻고 발전해야 하는데 되려 후퇴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요순(堯舜)시절이 그립다. 임금의 이름조차 모를 만큼 백성들은 평화로왔다. 그래서 요순지절(堯舜之節)이요, 태평성대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대통령의 이름을 너무나 깊이 인식하고 있다. 곳곳에서 대통령의 얼굴이 나오면 텔레비전의 화면을 외면하고 있으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두 가지의 임무가 주어져 있다
구미시의회가 회기 때마다 정책보좌관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려운 경제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모두가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도 힘이 모자랄 판국에 정책보좌관을 향한 의회의 곱지 않은 시선이 지속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미세먼지의 문제는 정부에서도 재난상황에 준할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에 발맞춰 우리 경찰도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자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198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70주년을 맞이하여 4월 13일을 기념일로 정하고 해마다 보훈처가 기념식을 거행해왔다. 그런데 올해 2019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임시정부 수립일은 4월 11일이라는 게 역사적 사실에 근접하며 4월 13일을 정부 수립이 완성된 날로 보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하면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기념일 날짜를 변경하였다. 4월 11일은 임정수립일이고 13일은 그것을 대외 선포한 날인데...
‘자유’라는 수식어를 ‘민주주의’ 앞에 붙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정치 지도자가 나타났다.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국민들조차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이상한 사회가 되었다. 평생 헌법 정신과 민주주의 시민성 함양 교육에 몸 바쳐 온 필자에겐 충격이었다. 진실과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사회를 원한다면 정치의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시민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만일 우리나라 헌법 정신에 대한 기본 이해가 안 된 소위‘개념 없는 사람들’이 국정 운영의 지도층에 포진되어 있다면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봄이 성큼 다가 온 지금, 제주 중산간 이랑에선 보리들이 이삭을 풀어올리고 있을 것입니다. 살을 도려내는 추위를 피해 세상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동안 보리는 제 스스로 추위와 외로움, 고독을 받아들였습니다. ‘받아들임의 삶’은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미국 CIA 보고서(2017년)에 의하면 북한의 인구는 남한의 1/2, 석유 소비량은 1/170의 차이가 있다. 현대 전쟁에서 ‘석유 한 방울 = 피 한 방울’이라 불릴 정도로 석유 에너지는 중요한 전쟁 수행 능력인데, 북한은 현재 에너지가 고갈되어 현대전을 장기적으로 수행할 능력이 없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의 평화는 더욱더 원치 않는다. 만일 북한이 진실로 비핵화를 실천한다면 적극적인 대북 경제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 만일 북한이 비핵화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국제 사회와 공조하여 대북 제재와 압박에 동참할 것이며, 한미 군사 동맹을 바탕으로 전쟁 방어 훈련을 지속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대한민국 국군 통수권자에게 위와 같은 선언을 기대했다.
최근 대학시절의 청춘을 아스팔트에서 보낸 친구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서슬퍼런 독재의 칼날에 맞서 싸우던 그는 용기있는 지식인이었다. 동료들이 소위 민주라는 이름이 붙여진 잔디광장에 모여앉아 술잔을 주고받는 그 즐거운 시간에 그 친구는 홀로 독재타도를 외치며 불끈 쥔 손을 허공을 향해 내지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국가가 지방자치단체,가족 공동체가 평안하려면 리더들이 안정되어야 한다. 민심을 실은 수레가 새로운 미래의 세계를 향해 순조롭게 나가려면 톱니바퀴가 맞불려 돌아가야 하는 조화의 이치와 같다. 리더그룹이 민심의 안위를 뒷전으로 미뤄놓은 채 반목과 갈등으로 점철된 정쟁만을 일삼는데 어떻게 수레가 앞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
지난 2월 구미시의회 임시회에서 의원들은 집행부의 소통부재를 강하게 질타했다. 실례로 농민과 도시민, 취수원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대한 지역 현안인 낙동강보 개방과 관련한 협약서 체결 당시에도 체결 당사자의 한축이 의회였는데도 불구하고, 행사당일까지도 의장은 물론 해당 의원들까지 모르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최근 북한의 최고 지도자는 경제 총력전을 선언하고 경제개발구, 관광 특구의 개발에 전 국력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제에 막혀 경제 활력의 동력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북한의 정책 담당자들은 국제 거래 없이 단순한 국내의 인력과 장비만으로 현대식 경제 성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신과 같은 위대한 수령 동지에게 감히 직언할 수 없는 비정상적 권력 구조이니 안타까운 실정이다.
‘좋은 전쟁보다 나쁜 평화가 낫다!’ 얼핏 좋은 말 같지만 정치학 원론 수준에서 살펴보면 이는 매우 위험한 궤변이요, 심각한 망발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 가운데 평화보다 전쟁을 선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백의민족으로서 예로부터 전쟁보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그러므로 ‘전쟁보다 평화가 낫다.’는 말은 일면 진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질 나쁜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고 한다면 이는 국가 주권을 포기한 매국적인 막말이 될 수 있다. 구한말 일본의 군사력에 항복 선언한 매국 행위를 한 자들이 오히려 칭찬받아야 할 것이며, 공산화 적화 통일을 위하여 남침한 6.25 한국 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의 희생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전쟁을 통하여 이기는 것보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one strike-out)제’, 경제용어 사전에서나 찾아볼 법한 제도가 이제 112허위신고에도 적용된다.
‘미래는 과거의 관성으로 나타난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이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부끄러운 과거사를 미화하고 부도덕한 침략사를 합리화하는데 있다고 보인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이 이러한 일본을 욕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미래의 희망으로 나갈 수 없다. 과거 제국주의 일본은 주변국를 침략하고 도덕적 만행을 저질렀지만 다행스럽게도 현재의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했고, 우리와 혈맹국인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얘기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 한마디는 상대를 감동시키기도 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우리 한국인들은 바로 자신들의 머리 위에 핵폭탄을 이고 있어도 불안해하지 않는 백성이 되었는가. 1인당 GDP 3만 불이 넘는 풍요를 누리면서도 기뻐하지 않는 백성이 되었는가. 미국의 대북 압박에 의하여 북의 김정은은 핵폭탄의 일부를 숨겨 둔 채 어쩔 수 없이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나온 정치 현상을 보고 ‘(트)가 (김)에 당황하고 있다, (김)의 배짱이 대단하다’는 등의 막말을 함부로 내뱉는 백성이 되었는가.
일제강점기인 1932년 중국 상하이 호커우 공원에서 일본 수뇌부에 폭탄을 투하한 윤봉길 의사는 그해 5월 25일 상하이 파견 일본군법회의로부터 사형을 언도받았다. 총살형에 처해진 것은 25세의 꽃다운 청춘이던 1932년 12월 18일이었다.
지난 해 12월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방안 검토’와 ‘의원정수 확대 논의’등의 내용을 담은 선거제도 개편 관련 합의문을 전격 발표했다. 민생 법안을 뒤로한 채 선거제 개혁을 요구하며 손학규 바른미대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국회에서 단식 농성을 이어간지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임종식 교육감은 취임 100일째를 맞아 저마다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진 모든 아이들이 함께 행복한 세상을 살 수 있는 힘을 키워주겠다는 신념으로 ‘삶의 힘을 키우는 따뜻한 경북교육’ 실현을 비전으로 제시했다.